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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배운 동학, 지금 생각해 보면 이상하지 않나요?" 농민들이 뭉쳐서 부패한 관료와 외세에 저항한 운동인데도, 왜 우리는 교과서에서 '반란'이라는 단어로 배웠을까요?
그리고 130년이 지난 지금, 그 후손에게 고작 10만 원을 준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다면… 지금이야말로 동학을 다시 들여다볼 시간입니다.
동학농민운동, 무엇을 위한 싸움이었나?
1894년, 전라도 고부에서 시작된 동학농민운동은 단순한 농민 봉기가 아니었습니다. 탐관오리의 수탈, 외세(청·일)의 개입, 조선 정부의 무능함이 쌓인 결과였습니다.
이 운동은 "사람이 곧 하늘이다(人乃天)"라는 동학 사상을 바탕으로, 평등한 세상과 자주적인 나라를 꿈꾸던 민중의 외침이었죠.
"보국안민(輔國安民), 척양척왜(斥洋斥倭)" - 나라를 도와 백성을 편안하게, 서양과 왜를 물리치자.
이 구호에서 그들의 분노가 아닌 '비전'을 읽을 수 있습니다.
왜 '혁명'이 아닌 '반란'으로 남았을까?
문제는 이후의 기록입니다. 동학농민운동은 1차 전봉준의 전주성 점령 이후, 정부와 전주화약을 체결하면서 개혁을 요구했지만, 이후 일본군과 조선 정부군의 협공으로 인해 무너졌습니다.
이후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동학은 '체제 위협 세력', '혼란의 주범'으로 왜곡되었고, 해방 이후에도 오랫동안 '역적' 이미지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이는 지금까지도 일부 교과서와 시험문제에서 이어지고 있죠.
다시 조명되는 동학의 가치
최근에는 동학을 단순한 농민 봉기가 아닌, 근대 민권 운동의 시작점으로 평가하는 움직임이 활발합니다. 특히 인내천 사상은 오늘날의 인권·민주주의와 맞닿아 있고, 중앙 권력과 외세에 저항한 이들의 모습은 현대적 가치로도 재해석되고 있습니다.
- 다큐멘터리 제작 및 상영회
- 동학기념관 재정비 사업
- 유네스코 등재 추진 논의
이는 동학이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할 정신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후손에게 남은 건 고작 10만 원?
앞서 1편 글에서 다룬 것처럼, 전북도는 동학농민운동 유족 429명에게 1인당 10만 원씩 지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물론 시작이라는 상징성은 있지만, 130년을 기다린 보상치 고는 참 씁쓸합니다.
그런데 그 씁쓸함은 단지 액수 때문일까요? 아직도 동학이 '혁명'이 아닌 '반란' 취급을 받기 때문은 아닐까요?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지 못한 나라가, 뒤늦게 내민 보상금은 그저 위로로만 보일 뿐입니다.
마무리하며
동학농민운동은 지금도 진행 중일지 모릅니다. 그들의 외침은 여전히 "사람이 하늘이다"라는 말로, 불의한 권력과 외세 앞에 멈추지 않았던 민중의 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제라도 우리는 묻고 싶습니다. 당신에게 동학은 ‘반란’입니까, ‘혁명’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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